너튜브

Please be kind (f. 삼프로TV -바이브컴퍼니 송길영 부사장)

담담한 2022. 11. 30. 14:19

 

바이브컴퍼니 송길영 부사장

 

1부는 여기요~

https://value-together.tistory.com/94

 

서로 이해가 안되는 세상 해법은 있다 (f. 삼프로TV -바이브컴퍼니 송길영 부사장)

이전 영상에서 세상이 변화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각 세대별로 여러가지 차이가 발생한다. 그 차이들이 어떻게 기인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이전에는 신입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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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이가 많았다.

출생률이 6%

따라서 가족 구성원이 많았다.

 

그 속에서 서열, 양보 등을

알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지금은 한 가정에 1~2명

그리고 GDP가 올랐다.

 

본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미국에서는 1949년도에

핵가족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리고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일자리가 있는 도시로 이주하며

3대 가족이 모여 사는 것에서

아빠, 엄마, 아이로 구성된

형태가 가족으로 기준이 된다.

 

이때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이 변천된다.

 

관계성의 단출과

큰 집단에서 작은 집단으로 분화된다.

 

 

 

'아버지가 있는 사회가 되어야...'

 

아빠가 너무 밖에서 생활하시고

직업으로 너무 많이 소진되어

집안에서 아빠의 역할이 줄어들어

슬슬 위와 같은 뉴스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것은 산업화와 근로시간과 관계가 있다.

 

이전에는 집 앞이 논, 밭이었고

일터였다.

직주근접이었다.

 

이후 산업화를 통해

대규모의 자본 설비를 세우고

그곳으로 이동할 여력이 있는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살고 있는 곳과

일하는 곳이 구분되기 시작한다.

 

일하는 곳은 환경이 좋지 못하다.

여유로운 사람들은 교외로 옮기고

통근의 개념이 만들어진다.

 

또한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낮시간 동안 교류하거나

같이 연결되는 부분이 줄어든다.

 

그 당시 

지방 대기업에 일하셨던 분은

현장 특근과 그곳에서의 근무를

감사하게 여겼다.

 

그 회사로 인해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고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그런 분에게

지금의 일에 대한 논리를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그때의 추억과 기억이

그때는 맞고 아름다웠지만

그것을 지금에 끼워 맞출 수가 없다.

 

 

 

 

 

그리고

대학 문도 넓어지고

취업문도 넓어졌다.

 

이러한 기회를 통해

60년대생은 더 활발해질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주어졌다.

 

 

 

 

민주화를 위한 투쟁과

승리가 있었고

 

 

 

 

그리고 찾아온 3저

이를 통해 사회의 중추로서

기회와 역할을 담당했다.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그리고 그들은 집을 얻었다.

 

이 모든 것들이

이들에게는 시련이자 선물로

기억되어 있다.

 

 

 

이후 본격적인 시련이 다가온다.

 

외환위기를 겪고

퇴사와 실업을 보며

내가 하는 일과 조직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고민들이 우리 머릿속에

같이 남겨져있다.

 

역전의 용사로 추억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바뀐 세상 속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지금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전에 가족이었던 회사가

가족으로서의 의미가

상실되고 있다.

 

 

 

회사가 가족인데 일찍 가라고 한다.

 

이를 서운해하는 사람도 있다.

 

연간 노동시간이 너무 많아

줄이자고 하니

이전에 회사에서 갖던 끈끈함은

어디로 가는 것에 대한 의문과

상실감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결국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사회 속에 다른 가족을 만들어

돈을 벌었던 것이다.

 

그러한 가족의 끈끈함이

옅어지는 것에서 오는 상실감을

밖으로 표현하는 순간

상대방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임금의 연공성이 대단히 높다.

 

직급을 없애고

서로 '프로'라고 부르지만

마음속에는 다른 생각을 한다.

 

연차가 쌓이면

연봉이 오르고

직장 내 사회적으로 보존받고

평가와 보상에 대한 예우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책이 있다.

 

'불평등의 세대'

 

기존 세대가 어떻게

불평등을 야기했는지

그 구조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 불평등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우위에 설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386 세대가

먼저 특정 직업을 가지고

시간에 흐름에 따라

공고히 하여

더 높은 위치와 보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상한 현상중 하나는

정년은 뒤로 갔지만

퇴직은 앞으로 당겨지고 있다.

 

정년이 보장되었지만

임금피크제와 사내 압력에 의해

퇴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나는 어떻게 살아왔지?'

'내 미래는 어떻게 되지?'

등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공감대에 크게 기여한 책이

 

'김 부장 이야기'이다.

 

대부분이 이야기한다.

'저거 내 이야기인데...'

 

지금까지 모두들

그냥 앞만 보고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뀐 것을

이제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선배의 인생 괘도가

나의 미래와 연결되지 않을뿐더러

지속되지도 않을 것임을 알게 된다.

 

 

결국 서로가 각자에 대해 생각하는

동상이몽이 된 것이다.

 

환경이 바뀌고

입장이 다르고

적용의 정도가 달라서

생각도 달라졌다.

 

정책과 새롭게 합의된 사항이

나오면 그에 따른 이견도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극과 극이 되었다.

 

60세 이후 일할 수 있도록 정년을 늘린다.

vs

고인 물, 꼰대 극혐

 

이를 간과할 수 없다.

싫은 사람끼리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직과 직업은

개인의 삶에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낮에만 10시간을 함께 있어야 한다.

 

인생 주기에서 차지하는 시간이

엄청나다.

 

이 시간을 서로 혐오하는 사람들끼리

앉혀놔야 한다는 것은 대단히 큰 문제다.

 

이런 사항이

팬데믹이 끝난 이후 발견된 것이다.

 

팬데믹이 일단락되고

회사에 복귀하라는 공지가 온다.

그리고

경직과 위계가 있는 장소로

다시 돌아가야 함에 대하여

'그만둘까?'를 생각하는 현상이다.

 

 

 

여기에 연결되는 것이 서열, 계급이다.

 

우리는 없애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직도 이러한 흔적은 여실히 남아있다.

연봉 체계, 승진 보상 등

 

이렇게 되면 계급에 대하여

간과할 수가 없다.

 

서로의 생각이 같지 않음을 느끼는 순간

내가 위계질서에서 하위에 놓였고

부당함을 당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이때부터는 무한 경쟁이 이루어진다.

위로 위로 올라가자!

 

 

 

 

왼쪽은 일본의 결재 도장을 찍을 때 문화다.

 

위계질서를 고려해 사장 밑으로는

도장을 꺾어서 예의를 표시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오른쪽의 가상회의에서와 같이

위계가 없어지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위계가 없어지는 방향으로

여러 가지 방법들이 지금도 

제안되고 있다. 

 

이러한 속도가 빨리 질수록

회사에서 느끼던 끈끈함과

회사라는 또 다른 가족의 형태들이

희미해져 갈 것이다.

 

서운하겠지만

익숙해져야 한다.

사회가 그런 방향으로 가기 때문이다.

 

 

 

 

이미 팬데믹 이전에

거리두기에 대한 책들이 많았다.

 

'팬데믹이 거리두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거리두기를 원했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현상을

오히려 '관계가 늘었다' 고

말하기도 한다.

 

이전에는 옆집 숟가락도 알고

어릴 적 오줌싸개였던 아무개의

일화를 알고 있어

평생 놀릴 수도 있을 정도로

관계가 한정되어 있었다면

 

지금은 인스타 친구,

페이스북 친구 등이

따로 있을 정도로

관계가 풍성해져

소수의 관계로 밀도를

높이기 어려워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반대로 연세가 높은 세대는

'회사가 곧 나'인

조직에 올인했기 때문이다.

 

회사 이외에서 관계를 찾기

힘든 구조였다.

 

 

 

 

그러다 보니

각자의 관계에 대하여

어떻게 설정하고

서로에게 다가갈 것인가에 대한 방법이

여러 측면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거칠었던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그러한 방식을 

누군가에게도 강요하고

대물림될 수 있으니

그러지 말아 달라고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는

문구도 나온 것이다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가 있다.

 

 

우리 삶에 다양성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그중 마음에 남는 대사가 있다.

'우리 모두가 싸우고 있는 거 알고 있어

왜냐면 우리는 혼란스럽고 서로가 두려운 거야.'

 

갈등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 상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장님은

신입에게

밥 먹자고 했을 때

거부당할까 봐 두렵고

 

신입은

신입 환영회 자리를 거부한다.

 

처음부터 고분고분하면

만만하게 본다는 것을

어디서 봤다는 것이다.

 

결국 서로를 모르고

겁내고 있고

못 믿는 상황에서 나오는 반응이다.

 

내가 잘 대해주면

더 심하게 들어오지 않을까?

 

내가 친한 척하면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지 않을까?

 

그래서 또 다른 대사가 나온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친절해야 해.

특히나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더욱.'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다.

 

이런 때 서로 친절하면

갈등은 해결될 수 있다.

서로 싸울 필요가 없다.

 

일단 두려운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강한 척할 때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여기는 말이지

원래 이런 곳이야!'

 

미국과 영국 등 외국에 살 때

어두운 골목에서 

홀로 걸어갈 때

누군가 나오면

통상적으로 

'Hello'라고 말한다.

 

'당신과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안정한 사람입니다.'

를 표명하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 사회는

인상을 찌 푸르고 감으로서

'나는 강하니까 건들지 마.'

라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많다.

 

이러한 두려움으로 인한

갈등을 없애기 위해서

우리가 서로 해야 할 일은 

상대를 알아야 한다.

 

젊은 세대는

'저분들은 토요일까지 

일을 했었구나.'

'가정을 위해

회사가 다른 가족을 만들었구나.'

'저분이 이야기하는 것이

그 당시에는 축복이었구나.'

라고 이해할 수 있다.

 

반대 기존의 세대는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만

경쟁은 더욱 치열하구나.'

'그 경쟁에 대한 피로도가 상당하는구나.'

'핵가족으로 인해 자신에 대한 중요도가

크구나.'

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때부터는

서로가 서로에게 친절하게 대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런 생각과 행동이

평등함에 기반되어야 한다.

경험을 통해 조언하는 방식이 되면

오지랖이 되거나 다른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계층이나 위계를 바탕으로 

경쟁사회가 심화되면

내 주위에 모두가

잠재적 경쟁자로 돌변한다.

 

지금 젊은이들이 보는 우리의 사회가 아닐까?

 


 

회사 대표 입장에서 직원들에게

최고급 의자와 기구를 제공하는 것은

직원을 배려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직원들은

회사가 친절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지만

회식을 한다거나 야근을 하는 것에는

전혀 친절함을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런 말이 있다.

열정은 보여주면 고마운 것이지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요구 이상의 친절함을

보여주면 고마운 것이지

그것을 보여주지 않은 것에

서운해하면 안 된다.

 

이것을 지키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만약 상호 신뢰와 관계가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더 나은 형태의 해결방법이나

추가적인 형태의 도움도 줄 수 있다.

 

이것은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상호작용 속에서 나타는 현상이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잘 되는 것에

전제해야 될 조건이 있다.

 

위계라는 것이 있으면

해결이 쉽지가 않다.

 

이해는 했지만 그래도

위계를 바탕으로 거칠게

상대를 대한다면

다시 갈등상태로 돌아간다.

 

이 부분은 연배가 높은 분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재떨이가 날아다니는 잘못된 투쟁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미래 세대를 대해야 한다.

 

 

 

내 생각

 

일과 직장 내에서의 갈등을 이야기 했지만

사실은

우리 삶에 대부분 갈등의 원인과

치유 방법을 제시해주셨다.

 

가정 내 부부싸움

고부갈등 등

대부분의 갈등이 서로를 모르는 두려움과

이해, 공감 포기에서부터 오는 것 아닐까?

 

고도로 발전한 사회 속에

이제 대한민국은 이성보다

감성과 공감이 조금 더 요구된다는 것을

방송 내 이프로의 고민과 표정에서 알게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HrTLArLEw_g